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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식당을 찾으면 메인 요리 주문과 함께 어떤 음료를 마실 것인지 꼭 물어봅니다. 물론 콜라나 주스 같은 음료도 있지만 맥주나 와인이 입맛에 맞는 우리는 늘 약간의 알코올을 포함한 음료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식문화에서 알게 된 특별한 술을 소개합니다.
튀르키예의 술 문화
오래전 두바이를 방문했을 때 어디서도 술을 마시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이슬람국가인 튀르키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튀르키예는 술과 음주에 굉장히 관대한 나라였습니다.
튀르키예 이전의 이름인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터키 독립을 이끈 국가적인 영웅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Mustafa Kemal Ataturk)"는 정교분리, 즉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바탕으로 공화국을 설립하였다고 합니다.
비록 국민의 약 98%가 무슬림이지만, 그들은 종교와 일상생활을 융통성 있게 분리하여 이슬람법을 엄격히 적용하지 않으면서 전반적인 서구화를 위해 힘써왔습니다. 유럽도 아닌, 아시아도 아닌 유라시아라고 불리는 터키의 지리적인 위치에 의해 중도적인 유연함에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튀르키예는 술판매와 음주가 모두 허용되는 이슬람국가입니다.
튀르키예의 전통술 라키(Raki)
튀르키예의 대표적인 술은 라키(Raki) 또는 라크라고 불리는 전통주입니다. 튀르키예식 정확한 발음은 알 수 없지만 함께 있던 친구들이 모두 라키로 발음해서 그냥 라키라고 쓰겠습니다. 라키는 한국의 소주처럼 가장 흔하고 대중적인 술인데 알코올 도수는 45도로 매우 독한 술입니다.
도수가 강한 만큼 주로 물과 희석해서 마십니다. 술 자체를 볼 때는 소주처럼 맑고 투명하지만, 물을 타면 우유색깔처럼 하얗게 변합니다. 그래서 라키의 이 사자의 우유(Aslan sütü)라고 한답니다. 사자는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강인함을 상징하는데, 라키에게 '사자의 우유'라는 별명을 붙인 것은 독한 라키가 강인한 튀르키예인들의 성향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라키의 주재료는 포도와 아니시드인데 이것 때문에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라키를 맛본 사람들이 고수에 치약을 탄 맛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맛의 술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라키 마시는 방법
라키를 마실 때 사용하는 전용 잔은 투명한 유리로 된, 폭이 좁고 긴 잔입니다. 보통 물과 라키를 1:1로 희석해서 마시는데 식당에서 라키를 주문하면 웨이터가 알아서 서빙을 해줍니다. 취향에 따라 얼음을 추가해서 마시기도 합니다.
라키는 단순히 술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위장약, 소화제의 역할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함께 마신 독일친구가 이 술을 즐겨 마시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음식을 먹은 후 속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니고 식후에 한잔 정도 식후주로 즐긴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국민 술, 우조(Ouzo), 그리스어 Ούζο (ΟΥΖΟ)
독일 만하임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두어 번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때 마신 식후주가 우조입니다. 식사를 마치자 서빙 하는 직원이 독일어로 무언가를 물었고 대화에 끼지 못한 나는 친구의 표정만 보고 함께 오케이를 외쳤습니다. 식후주를 마시겠냐는 질문이었고 “Why not?”, 그때 나온 술이 그리스의 국민 술이라는 우조였습니다.
40도 이상의 높은 알코올 성분을 가진 우조는 튀르키예에서 마신 라키(rakı)와 비슷한 맛으로 주정에 아니스, 고수씨, 정향, 계피 등의 향신료를 넣고 숙성시켜 만든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포도주를 만들고 남은 포도찌꺼기를 재탕한 와인을 증류시켜 만들었지만 현대적인 우조는 위스키처럼 곡물로 만든 주정을 이용해 양조합니다. 우조의 오래된 제조사들의 기원지가 대부분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이라고 하니 튀르키예의 라키와 비슷한 맛을 가진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조 마시는 방법
우조 역시 물을 타서 마십니다. 물을 섞으면 라키와 마찬가지로 뿌연 흰색 액체로 변하는데 이 현상을 우조 현상 또는 루쉬(Louche) 현상이라고 한답니다. 높은 도수의 알코올에 녹아 있는 유분에 물이 섞이면서 유화하는 원리라고 합니다.
식욕 촉진효과가 있어 식전주로도 마신다고 하지만 우리가 간 두 곳의 식당에서는 식후에 우조를 서비스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라키처럼 소화제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식후주로 줄 때는 작은 전용잔에 물을 타지 않은 우조가 나왔습니다. 맨 윗부분에 살짝 기름기처럼 보이는 것이 떠있는 맑은 술인데 엄청 독하고 특이한 향을 갖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와 함께 한 술
술은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분위기에서 마셨을 때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튀르키예에서 마신 라키는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마셨습니다. 패키지 관광객이었던 우리는 호텔 바에 둘러앉아 와인을 마시며 그날의 여행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넷이 마신 와인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한 친구가 벌떡 일어나 새로운 술을 주문했습니다.
와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했던 나는 처음 보는 술에 호기심이 발동했고 무엇보다 장 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친구에 말에 솔깃해졌습니다. 튀르키예에 도착하고 사흘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던 혼자만의 비밀이 있었던 터라 반갑게 동참했습니다.
용감한 우리는 물도 타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라키 한 병을 비웠습니다. 먼저 고수향이 확 다가왔고 이어서 민트향이 느껴졌습니다. 높은 도수에 놀라 꿀꺽 삼키자 코까지 뻥 뚫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놀라는 내 표정을 지켜보던 친구들이 웃으며 놀렸지만 확실히 처음 맛보는 특이한 술이었습니다.
함께여서 더 즐거웠던 카파도키아의 밤이 그렇게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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