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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오랜 직장생활 동안 출장과 휴가로 해외여행을 여러 차례 다녔지만 호스텔에 숙박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출장으로 간 여행은 당연히 호텔을 이용했고 따로 여행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퇴직을 하고 줄어든 예산과 길어진 여행의 엇갈린 선상에서 재정상황을 살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비야 호스텔에서의 숙박은 많은 것을 고려한 선택이었습니다. 잠깐의 휴식을 위해 떠난 휴가가 아니라 이제부터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불필요한 경비를 줄여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가는 숙박비부터 줄여야 했기에 호텔이 아닌 호스텔을 선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스텔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방이나 거실에서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리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러 여행 에세이에서 본 내용이기도 하고 친구가 예전에 갔었던 호스텔에서도 그런 일들이 당연했었다고 하기에.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호스텔은 기대했던, 그런 곳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테이블 두 개가 놓인 작은 주방이 공동 공간의 전부였고 루프탑이라고 안내되어 있는 곳은 흡연자들만 가끔 올라가는 곳이었습니다. 첫 호스텔 숙박인데 실망이 컸습니다.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거실 공간을 갖춘 호스텔은 어디 있는 거냐고!
솔직히 호스텔을 예약할 때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욕실과 화장실의 불편함을 가장 우려했었습니다. 매번 모든 걸 챙겨가서 씻고 다시 갖춰서 방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찮은 일일지 예상되는 일이었으니까요. 더구나 이곳에는 손세정제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샴푸며 바디 샤워 제품도 별도로 구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그 부분은 금세 적응이 되었습니다. 잠옷 차림으로 화장실 가는 것도 다들 이해할거라 생각하니 편하게 나갈 수 있었고 몇 개 안되는 욕실이었지만 그리 붐비지 않아 원할 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바쁜 여행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들 일찍 챙겨 나간 후 늦은 시간에 욕실을 이용하다보니 그런 것인가 싶기는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흘 정도의 기간을 두고 침대시트를 교체해주고 청소도 해준다는 점입니다. 사실 바닥청소는 안한 것 같았지만 빈대를 걱정하며 챙겨온 배드버그 퇴치용 스프레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뿌리자 했었는데 첫날 너무 피곤해 그대로 쓰러지는 바람에 사용하지 못했고 다행히 별탈 없어 잘 지냈습니다.
예상치 못한 폭우로 이곳도 영향을 받았고 와이파이가 연결이 안되는 일도 있었고 온수 장치가 고장나 샤워를 못한 날도 있었지만 비록 시간이 걸렸어도 직원들이 열심히 복구해 주었습니다. 잘 관리하려고 노력하는 곳인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은 관리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용자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깨끗하게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아침에 찻물을 끓이려고 주방에 갔다가 연세가 있으신 부부가 식사를 마치고 테이블 위 정리는 물론 떨어진 빵부스러기까지 빗자루로 깨끗이 쓸고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왔습니다.
삶은 새로움의 연속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겪으며 살 수 없기에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경험을 보태게 되는가 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에 감사하며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애써 긍정해 봅니다. 젊을 때 좀 더 아끼고 모아서 편안한 노후를 준비했어야 했는데...하핫!
세비야 거리엔 오렌지 나무들이 가로수로 자라고 있습니다. 노르스름 익어가는 오렌지도 보이지만 아직 10월 이 시기엔 초록초록한 오렌지들이 달려있습니다. 제철에 노란 오렌지들이 주렁주렁 달린 가로수가 거리를 가득 채운다면 훨씬 더 예쁠 것 같습니다. 다만 큰 오렌지가 언제 머리위에서 떨어져 내릴지 모르니 조심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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