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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을 떠나기 전날, 대충 짐정리를 마치고 우리가 첫날부터 갔었던 숙소 근처 작은 가게에 들렀습니다.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며 구글번역기의 도움을 얻어 주인 아주머니께 인사를 전했습니다. 내일 떠나는데 인사하러 왔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약간은 촉촉한 눈빛으로 ‘오브리가다’를 몇 번이나 말하더니 가게 뒤로 들어가 무언가를 들고 나왔습니다. 아주머니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설탕 봉지를 넣은 에스프레소컵 두 개였고 기념품이라며 주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고 감동한 우리는 차례로 아주머니와 포옹을 나누며 건강하시라, 다시 만나자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컵 안에 담긴 노란 설탕 봉지가 따듯한 그녀의 마음을 더 달달하게 전달해 주는 듯 했습니다.
3주간 몇 번이나 갔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그곳에서의 첫날 첫 만남이었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만날 수 있는 친근한 모습의 아주머니가 계셔서 더 정겨웠던 것 같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미소와 함께 '오브리가다' 한마디로만도 충분했었던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다시 리스본을 찾게 된다면 꼭 한 번 그곳에 들러보리라 마음에 새겨봅니다.
그렇게 3주간 있었던 그곳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우리 식으로 작별을 한 후 다음날 아침 세비야로 출발했습니다. 리스본 세테 리오스(Sete Rios) 버스터미널에서 아침 10시 45분에 출발하는 Alsa International 버스를 타고 스페인 세비야 Plaza de Armas 터미널에 도착하니 저녁 7시였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이의 시차 한 시간을 제외하면 7시간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오는 도중 여러 도시들에서 승객들이 내리거나 탔고 언제인지 모르게 국경을 넘어와 있었습니다.
리스본 세테 리오스(Sete Rios) 버스터미널은 기차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건물을 나가 살짝 돌아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메트로를 타고 찾아간 그곳은 아침부터 붐볐고 입구에서 마지막 나타를 먹으며 포르투갈과 작별한 우리는 하루를 온전히 함께할 장거리 버스와 만났습니다.
버스는 리무진이 아닌 일반버스였고 다리가 긴 친구에겐 무척이나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거기다 기사님은 도무지 승객과 소통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완고한 인상으로 큰소리로 스페인어로만 일방통행으로 뭔가 전달했고 음식물과 심지어 물까지 차 안에 반입할 수 없다며 소리를 질렀고 백팩도 짐칸에 넣으라고 단속했습니다.
그리고 3시간 가까이 달리던 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하자 앞에서 큰 목소리로 ‘블라블라’ 하고 내리랍니다. 뒤에 있는 분에게 물어보니 이곳에서 20분 휴식시간을 준다고 알려줍니다. 우리도 얼른 내려 휴게소에서 커피와 빵으로 늦은 점심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가 시련의 시작입니다. 적어도 한번쯤은 더 쉴 줄 알았는데 가끔 들르는 도시의 버스터미널에선 내리지 못하게 했고 꼼짝없이 차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나마 화장실은 버스 안에 있어서 1유로씩 넣어 해결했지만 심한 갈증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디나 구멍은 있는 법. 여성용 가방은 들고 타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가방 안에 들어있던 생수병도 함께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기사가 못 보게 엎드려 한 모금 들이켜는 것으로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혹시나 두고 떠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그렇지 않더라도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시키는 대로 따르다보니 이게 맞는 건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하긴 말이 통하지 않으니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도 하고...
리스본에서 세비야까지 7시간 30분 걸린다고 했었는데 그렇게 단속하더니 15분을 앞당겨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각자 짐을 찾아 터미널을 빠져나왔습니다. 길고 험난했던 버스여행 끝에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우리는 감옥에서 탈출한 죄수마냥 기뻐하며 신선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셨습니다. 앞으로 2주간 있을 이곳에 대한 기대감 만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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